토론
2025년 12월 9일, 제300회 일본전문가 초청 세미나가 서울대 국제대학원 GS룸과 온라인 zoom에서 개최되었다. 하이브리드 강연으로 진행된 이번 행사에서는 박경민 서울대 비교문화연구소 연구원이 “일본 시민성의 구성: ‘선의’의 관리와 ‘자발성’의 제도화”를 주제로 발표했다.
발표자는 국가정책이 어떻게 일상적·미시적인 수준에서 실천되는지를 탐구하는 인류학자다. 연구자의 핵심 질문은 ‘일본 시민사회의 자주성에 대한 상반되는 평가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다. 맥락적 이해를 통해 ‘시민성’을 규명하려는 연구자는 오사카 남부의 농어촌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국제교류협회, 서클, 클럽 등을 연구했다. 오사카 북부는 공항과 엑스포 등 다양한 개발이 이루어진 반면, 남부는 상당한 박탈감을 가진다. 90년대 초 “시민의 실험”이라고 이름붙어지는 등 큰 기대와 함께 국제교류협회가 설립된 이후, 이 협회들은 행정 보조금 없이 민간인이 이사장·사무국장을 맡는 체제가 운영되는 등 지자체나 국가와의 거리를 유지했다.
일본에서 ‘시민사회’가 정의되는 관점과 그 궤적을 연구 주제로 삼은 발표자는, 시민사회의 자발성과 자율성을 분리하여 전자가 대단히 강조되는 반면 후자에 대한 강조는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결사체 등 비국가행위자, 시티즌십(citizenship)과 국적의 관계, 과정적·능동적 시민성 등 이론적 배경을 조망한 뒤 발표자는 역사적 접근을 통해 국가 주도의 ‘선의은행(善意銀行)’ 제도(1962)와 시민 중심의 ‘오사카 뷰로’(1965) 간 긴장, 외래어 ‘보란티아(volunteer, ボランティア)’의 확산을 소개했다. 이때 이후로 단어를 제도화하려는 정부와 자율성을 수호하려는 시민사회 사이의 갈등이 지속되었다. 이 당시에 형성된 <보란티아=‘무상성’(無償性)> 관념이 이후 시민사회 활동을 방해하게 되었다. 2000년 무렵에는 국가가 거버넌스·'사회봉사' 등의 키워드를 강조하면서 보란티아의 ‘선의’를 제도화했다. 한신·아와지 대지진(1995) 이후에는 NPO법이 만들어지며 ‘자발성’이 제도화되었다. 시민사회는 자발성과 지역 결사체 중심으로 운영되었지만, 자율성 측면에서는 국가와의 거리가 불분명해지고 활동이 지역사회 중심으로 제한되었다.
토론에서는 지역 내에서 ‘커뮤니티’라는 표현이 유통되는지의 여부, 도쿄와의 비교에 따른 오사카 지역의 특수성, 지역 공론장을 만들기 위한 실천적 아이디어, 보란티아의 인적 구성과 활동 목적, 60년대 시민사회의 위기감과 전전(戦前)에 대한 기억의 연관성, ‘자율성’ 자체의 재개념화 필요성 등이 제기되었다. 발표자는 관련자만이 장기적으로 머무르는 ‘이바쇼'(居場所)가 아니라 시민공간이 형성되고 있다는 점에서 대안적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고, 2018년을 전후로 구성원 세대가 급격히 어려졌으며, 앞으로의 시민사회에서 ‘관’과 ‘민’ 사이 힘의 밸런스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