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2025년 10월 21일, 제298회 일본전문가 초청 세미나가 서울대 국제대학원 GL룸과 온라인 zoom에서 개최되었다. 하이브리드 강연으로 진행된 이번 행사에서는 김욱 서울대학교 특임연구원이 “제국의 식민지 엘리트와 ‘외지’로서의 조선·대만: 경성제대 예과·대북고교 출신자들의 문예물을 중심으로”를 주제로 발표했다.
발표자에 따르면, 근대 국가로 변모한 직후의 근대 일본은 식민지와 본국의 관계 설정에서 서구 열강의 식민지와 다른 경로를 따랐다. 제국 일본은 대만을 궁극적으로 자신의 영토로 편입하려고 했으나, 곧 조선과 대만 등을 강압적으로 급격하게 ‘내지’로 편입하는 것에 곤란을 겪고 이들을 ‘외지’ 개념으로 묶었다. 영·불·독의 식민 통치에서는 제국-식민지 간 물리적·정서적 거리가 상당했고 문화·인종을 철저히 구분했다. 반면 제국 일본의 경우 한자 문화권으로 엮이는 등 식민지와의 물리적·심리적 거리감이 크지 않았다. 이에 ‘외지’는 전형적인 ‘식민지’가 아닌 ‘내지 연장’으로서 구축되었다. 그 단계적 과정으로서 제국 일본은 일본어로 강의하는 대북고등학교와 경성제국대학을 설립했다.
일본인과 함께 수학하게 된 식민지인들은 ‘식민자-피식민자’의 이분법에서 ‘엘리트-비엘리트’의 새 등식으로 이동하여 내선(內鮮)/일대(日臺) 엘리트 공동체의 형성 기반을 마련했다. 경성제국대학은 1925년 『청량(淸凉)』, 대북고등학교는 1926년 『상풍(翔風)』을 통해 식민자와 피식민자 엘리트들이 공동으로 문예활동 잡지를 기획 및 발간했다. 경성제대는 소설, 대북고교는 시를 위주로 발표했으며 이는 이후 각 지역의 문단 형성 특징과도 연결된다. 『청량』 은 조선인과 일본인의 구분을 은폐했으나 이것이 두 학생 그룹의 조화로운 문예활동을 촉진하지는 못했다. 『상풍』 초기 작품에서는 ‘우리’와 다른 타자로서의 ‘불가사의’라는 엑조티즘과 낭만주의, ‘대만’과 ‘중국’의 관계를 일본 나름의 방식으로 전유하는 현상이 드러난다.
토론에서는 발표자가 『청량』과 『상풍』이라는 잡지에 주목한 이유, 식민지의 제국대학에 다니던 일본인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일본 지역 내 규슈·오키나와 등 식민지와 더 가까운 지역만의 독특성, ‘외지’와 ‘식민지’ 개념의 차이, 일본으로 복귀한 일본인이 전후에 문필 활동을 한 일이 있는지 등에 대한 질문이 제기되었다. 발표자는 두 잡지는 식민자와 피식민자가 함께 편집 및 출간한 매체이기 때문에 두 집단 간 상호작용이 글에 드러난다는 특수성을 제시했다. 또한 많은 경우 ‘외지’에서 수학한 일본인들은 ‘내지’의 제국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원정을 오는 경우였다. 경성제대 출신은 전후에 작가로서 글을 발표하기보다 학자의 삶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