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2022년 11월 8일, 제270회 일본전문가 초청세미나가 웨비나로 개최되었다. 50여 명의 참가자가 참석한 가운데 마이클 크로닌(Michael Cronin) 윌리엄&메리대학 근대언어문학과 조교수가 ‘The Boy in the Mech: Evangelion and Rupture(기계 속 소년: <신세기 에반게리온>과 균열)’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하였다. 발표 내용은 아래와 같다.
발표자는 우선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처음 방영된 해인 1995년이 한신대지진, 도쿄 지하철 사린 가스 사건, 금융 위기, 무라야마 도미이치 내각 붕괴라는 일련의 사건이 벌어지면서 일본 전후 질서의 균열이 상징적으로 드러난 해였다는 점을 제시한다.
이어서 발표자는 일본 대중문화에서 로봇, 메카(メカ, 거대로봇), 사이보그 등의 하이브리드적 존재가 등장하는 궤적을 포스트휴머니즘의 시각 위에서 추적하고 해석한다. 메카 장르의 역사의 흐름에 따라 각 작품에서의 기계와 소년의 합일도는 점차 높아지고, <신세기 에반게리온>에 이르면 기계와 소년은 고도의 합일을 이룬다. 이렇듯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기존 메카 장르 작품들의 표현으로부터 차별화를 꾀하는 것은, 기존 메카 장르 작품들에서 비유적으로 승인했던 일본 전후 질서에 회의적인 시각을 던지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도 일본 전후 질서의 균열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발표가 끝난 후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1995년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과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관계성에 대한 심층적인 질의가 있었다. 발표자는 작품의 제작 타임라인을 간단하게 언급하며, 작품 자체를 한신대지진 등에 대한 직접적인 반응으로 볼 수는 없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다만 당시 <신세기 에반게리온>에 대한 열렬한 호응은 1995년의 시대 분위기와 맞물린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점을 역설했다. 나아가 1995년이라는 해를 중심으로 일본 전후 사회에 일어난 보다 거대한, 장기적인 변화에 대한 논의가 가능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오갔다.
이외에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 인간과 로봇 사이의 합일을 드러내는 ‘싱크로’라는 개념의 등장 배경, 발표에서 설명된 문화 및 역사적인 맥락을 공유하지 못하는 해외 시청자의 독해, <신고질라>와의 비교, 젠더 문제와 관련하여 <공각기동대>와의 비교 등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진 후 세미나가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