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2020년 12월 8일, 제246회 일본전문가 초청세미나가 웨비나로 개최되었다. 10여 명의 참가자가 참석한 가운데 엄혜원 하와이대학 정치학 박사가 “일본 사회 운동에서의 소송의 의의: 일본인 잔류고아의 사례를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발표를 하였다. 발표 내용은 아래와 같다.
2차대전 직후, 중국 북동부에 남겨진 일본인 잔류 고아는 민간인 송환 실태와 이후 귀국 과정 그리고 귀국 후 정착 과정에서 정부의 적절한 지원 대책이 없던 점에 대해 2002년부터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고베지방법원을 제외한 7개 법정에서 패소하였으며, 대신 아베 정권이 일본인 잔류 고아에 지원 의지를 보임에 따라 2007년 12월부터 2008년 5월까지 순차적으로 소송이 취하되면서 마무리되었다.
잔류 고아 소송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잔류 고아의 귀국과 정착을 둘러싼 다양한 문제들이 오랫동안 해결되지 못한 이유이다. 이를 규명하기 위해서 일본인을 규정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인 혈통, 혈연관계를 볼 필요가 있다. 혈연관계를 중심으로 일본 민족의 경계를 규정하는 일본인의 의식은 잔류 고아의 귀국 및 정착 과정을 둘러싼 문제들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일본 정부 및 대중은 잔류 고아의 귀국 문제를 잃어버린 혈통을 찾는 개인의 문제, 가족의 문제로만 여겼고, 그 결과 잔류 고아의 귀국 이후 정착의 문제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 문화의 강한 영향을 받은 귀국한 잔류 고아들은 중국인 이주노동자의 한 부류로 오해를 받게 되었다. 1990년대 이후에 일본 사회에서 강화되기 시작하는 배타주의는 잔류 고아들과 그 중국인 가족들이 일본에서 차별을 받고 소외되도록 만들었다.
둘째로, 잔류 고아들과 시민사회 단체 및 활동가들이 법정 소송을 택한 이유와, 일본 사회운동에서 소송이 효과적인 전략인지에 대한 의문이다. 식민 지배나 전쟁 등과 관련된 과거사에 대한 몰이해 및 무관심 등으로 인해 잔류 고아와 시민 활동가들은 정부와의 직접 교섭을 통해 정책 변화를 불러오기에 충분한 정치적 압력을 만들어 낼 수 없었다. 그러나 법정에서 인정된 잔류 고아에 관한 사실들, 예를 들어 잔류 고아는 국가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정당한 자격을 지닌 일본 국민이라는 사실들은 이후에도 정부와 교섭을 지속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이는 소송의 승패와 관계없이 잔류 고아와 활동가들에게 중요한 자산으로 남았다.
결론적으로 많은 시민단체와 활동가들이 소송, 특히, 대정부 배상 소송이 정부 정책의 변화라는 목표 달성에 효과적인 전략이 아니라고 예상하던 것과는 달리, 일본인 잔류 고아 문제에서 시민사회의 지원활동과 결합된 대정부 소송은 사회 운동의 성과를 극대화할 수 있었다. 이에 덧붙여 일본인 납북 피해자에 대한 고이즈미와 아베 수상의 지원 논리는 잔류 고아에 대한 지원책을 주장할 수 있도록 하는 강한 근거가 되었으며, 지원수준을 정하는 중요한 기준점이 되었다.
발표가 끝나고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먼저 선행연구와의 비교 검토에 대해, 발표자는 법적 운동에 대한 이론적 배경이 대부분 미국을 배경으로 하는 것에 비해 아시아에서의 사례는 비교적 검토되지 않는다는 점을 문제의식으로 삼아 법이라는 시스템을 통해 분석하고자 했다는 소감을 밝혔다. 나아가 중국에 남은 잔류 고아와의 비교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에 귀국한 잔류 고아의 정체성과 경험이 제각각인 만큼 중국에 남은 잔류 고아들의 사례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충분히 다시 검토되어야 할 지점이면서 연구에 어려움을 주는 지점이라고 밝혔다. 이어서 일본 사회운동에서의 소송의 의미, 넷우익과의 관계 문제, 일본의 혈통주의적 인종주의 문제, 국제정치 및 일본 국내정치와의 관계성 등의 질의가 이어진 후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