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오랫동안 우울증이 드물었던 일본에서도 1998년 이후 자살률이 14년 연속으로 3만 명을 넘어섰고 신세대 항우울제가 도입됐을 때부터 일본에서 우울증은 급속도로 국민적 병이 된 감이 있다. 우울증을 이유로 휴직하는 근로자가 늘면서 직장에서는 우울증·자살예방대책으로 시작된 스트레스 체크가 매년 이뤄지는 가운데, 마음 건강에 대한 의식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게다가 얼마 전까지는 “呆けた(노망나다)”고 여겨졌던 사람들이 ‘치매’라고 진단받게 되는 가운데, 예방을 목표로 “뇌 트레이닝”에 힘쓰는 고령자도 급증하고 있다. 또한, 직장 건강검진에서 뇌 MRI 검사를 받아 뇌의 위축을 지적받고 황급히 메모리 클리닉에 뛰어들어가는 중장년층도 적지 않다. 일본에서는 현재 이처럼 삶의 후반부를 뒤덮는 ‘의료화(medicalization)’가 진행되고 있다. ‘의료화’란 예전 같으면 삶의 고뇌(생로병사)나 도덕적 과제(미침, 음주, 성적 일탈)로 여겨졌던 것이 병리로 재정의되어 의료 개입의 대상이 되는 현상을 뜻한다. 우울증이나 늙음의 의료화가 일본에서 어떻게 일어났는지, 인생의 경험을 정신의료의 시점에서 다시 파악하는 것은 어떤 이해를 가져오고 어떤 ‘공감’을 가능하게 하는지에 대해 의료인류학적 시점에서 고찰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