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으로 바로가기

전문가초청세미나

Seminars by Invited Experts

피폭의 기억과 원자력의 꿈정보
제목 피폭의 기억과 원자력의 꿈
발표자 야마모토 아키히로(山本昭宏) 고베시 외국어대학 종합문화 준교수
일시 2021년 9월 28일 (화) 12:30-14:00
장소 Zoom Webinar
회차 257회
토론
2021년 9월 28일, 제257회 일본전문가 초청세미나가 웨비나로 개최되었다. 30여 명의 참가자가 참석한 가운데 야마모토 아키히로(山本昭宏) 고베시 외국어대학 종합문화 준교수가 ‘피폭의 기억과 원자력의 꿈’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하였다. 발표 내용은 아래와 같다.
발표자는 먼저 전후 일본에서 피폭에 대한 공포·기억이 원자력을 활용하고자 하는 꿈과 공존해온 양상을 네 가지 예시를 통해 소개하였다. 예컨대 2021년 NHK방송문화연구소에서 여론조사를 시행한 결과, 약 70%의 응답자가 국내에서 원자력발전소의 이용을 줄이거나 그만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런 한편, 같은 해 9월 일본의 원자력발전소 여섯 곳은 재가동 중에 있었다. 이에 발표자는 ‘피폭의 기억’과 ‘원자력의 꿈’이 어떻게 관련되어왔는지, 그 관계의 변화가 있었다면 그 요인을 파악할 필요성을 피력하였다. 방법론 측면에서는 언설, 표상의 네트워크로서의 미디어문화를 자료 대상으로 삼아 탐구하여, 핵에 관한 ‘시대정신’ 혹은 ‘가치관’을 해명하고자 하였다. 이때 미디어 수용자 속성의 차이와 같은, 각 미디어의 특성의 차이를 염두에 두고 분석을 시도하였다.
발표자는 전후에 피폭의 기억과 원자력의 꿈이 공존한 대표적인 현상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1954년 개봉한 영화 <고질라>와 1952년부터 데즈카 오사무가 연재한 만화 <철완 아톰>의 공존을 제시하였다. <고질라>는 남태평양에서 빈발했던 미국의 핵실험으로 인해 태고의 생물 고질라가 깨어나 방사선을 발하고 도쿄를 파괴한다는 설정의 영화로, 핵의 공포를 체현하고 핵실험에 대한 비판적인 의식을 내보였다. 한편 <철완 아톰>에서는 밝은 미래를 가져다줄 히어로로서의 아톰의 모습이 주로 그려짐으로써 핵 에너지는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미래의 힘으로 묘사되어 있다. 작중에서 아톰의 위험성이나 피폭 노동자의 문제도 분명히 언급되고 있긴 하나, 당시 독자들은 아톰의 강하고 정의로운 측면에 집중했다.
이렇듯 핵의 공포 및 피폭의 기억을 보여주는 <고질라>와, 미래의 에너지로서의 핵에너지에 대한 기대감을 보여주는 <아톰>이 공존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지 고찰하기 위해, 발표자는 피폭국이 원자력발전 대국이 된 과정을 다루기 위해 우선 1954년의 이중성을 제시하였다. 1954년 3월, 비키니 사건(제5후쿠류마루 사건)이 일어나고 일본이 경험한 세 번째 핵 피해로 위치지어졌다. 이에 원자폭탄·수소폭탄 금지 서명운동이 일어나고 히로시마·나가사키의 피폭자에 대한 관심이 다시금 모여 피폭자 운동이 전국규모로 일어나기도 했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1955년에 발표한 영화 <산 자의 기록>이나 당시의 여론조사, 지식인 언설 등을 통해서도 당시 핵실험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공포를 다양한 방식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한편 1954년 3월 2일, 일본의 보수3당이 원자력 예산을 제출하였다. 그 배경에는 1953년 12월 아이젠하워의 ‘Atoms for Peace’ 연설을 비롯해 원자력의 평화 이용을 내세웠던 미국의 존재가 자리하였다. 이에 호응하여 보수3당이 원자력 예산을 제출하였고, 학계, 정계, 산업계 각각에서 원자력 연구 개발에 동참하였다. 더불어 1954년 도쿄 신주쿠 이세탄 백화점에서 원자력을 친근하게 소개하려는 취지의 전시가 열리고, 1955년 도쿄 히비야 공원에서 원자력 평화 이용 박람회가 개막한 후 전국순회를 하였다. 이외에도 요미우리 신문, 아사히 신문을 막론하고 지식인 언설이나 표어 등을 통해 원자력 평화 이용에 대한 당시의 높은 기대치를 확인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원자력에 대한 공포가 컸던 만큼, 그 원자력의 평화 이용을 통해 밝은 미래를 가질 수 있다는 인식 구조의 전환이 매스미디어를 통해서 호소되었던 것이다.
발표자는 원자력의 군사 이용에 대한 공포와, 평화 이용에 대한 기대가 공존할 수 있었던 기원은 점령하의 검열에 있었다고 분석하였다. 주지하다시피 연합군 점령하의 일본에서는 원자폭탄에 대한 비판적인 보도나 표현은 검열의 대상이 되어 불가능했다. 점령기에 니시나 요시오, 다케타니 미츠오 등의 물리학자는 원자폭탄의 존재 자체가 평화를 가져다줄 수 있다는 등의 발언을 한 바 있다. 점령기가 끝난 뒤에도, 피폭자마저도 원자력의 평화 이용에 환영한다는 발언을 한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방사선은 극복 가능한 장벽으로서 인식되었다. 원자력 평화 이용에 대한 회의는 1970~80년대에 이르러 제기되기 시작하지만, 사회의 주류적인 의견으로 자리잡지 못한 상태인 채로 일본은 2011년 동일본대진재를 맞이하였다.
발표가 끝난 후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발표에서 지식인 언설이 자료로 많이 활용되었는데, 그 외에 실제로 일반인들의 원자력 발전에 대한 사고방식에 영향을 미친 미디어 표상의 존재 여부에 대한 질의가 있었다. 특히 GHQ의 점령기가 끝나고 비키니 사건이 일어나기 전의 2년 동안의 시기에 히로시마나 나가사키의 구체적인 피해에 대한 미디어의 표상이 있었는지, 그것이 일반인들의 원자력 발전에 대한 사고방식에 영향을 미친 바 있는지 궁금하다는 질문이 이어졌다. 이에 발표자는 점령기가 끝나고 1952년에 8월에 출간된 히로시마·나가사키 피폭 피해에 대한 사진집 몇 권과 당시에 동류의 사진집이 다량 출간되어 서점에 늘어서있었던 풍경을 소개하였다. 당시는 TV가 들어오기 전이었으므로 히로시마·나가사키의 사진집이 당시의 대학생이나 고등학생 등의 젊은이들에게 미친 영향이 굉장히 컸다는 것을 부연하였다.
이외에 3.11 동일본대진재 이후 아베 정권기를 지나면서 원자력발전소 재해에 대한 논의가 축소되고 망각된 현상, <고질라>나 <철완 아톰>에서 발견되는 트랜스내셔널한 지점, <고질라>와 같이 핵 문제에 비판적인 영화가 탄생할 수 있었던 추가적인 배경, 최근 원자력 발전이 환경오염이 덜하다는 측면에서 주목받는 현상에 대한 일본 내의 논의, 일본 내 원자력에 대한 인식에 중국과 북한의 핵병기 개발이 미친 영향 등의 질의에 대해 논의가 이루어진 후 세미나가 마무리되었다.
이미지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