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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초청세미나

Seminars by Invited Experts

관저주도의 기원 : 데모크라시, 제국, 외압정보
제목 관저주도의 기원 : 데모크라시, 제국, 외압
발표자 마에다 겐타로(前田健太郎) 도쿄대학대학원 법학정치학연구과 교수
일시 2021년 6월 15일 (화) 12:30-14:00
장소 ZOOM Webinar
회차 255회
토론
2021년 6월 15일, 제255회 일본전문가 초청세미나가 웨비나로 개최되었다. 40여 명의 참가자가 참석한 가운데 마에다 겐타로(前田健太郎) 도쿄대학대학원 법학정치학연구과 교수가 ‘관저주도의 기원: 데모크라시·제국·외압’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하였다. 발표 내용은 아래와 같다.

본 발표는 1990년대 이래 일본에서 생겨난 수상에게 권력을 집중시키는 관저주도의 정책형성 경향이 관료제의 분권화를 기조로 하는 다른 국가들의 행정개혁과 다르다는 점에 주목한다. 전전부터의 일본 관료제의 전통하에서 전후 일본에서도 관료주도의 정책형성이 이어졌으나, 1990년대 이래로 이어진 몇 차례의 행정개혁에 따라 내각관방이 급증하면서 관저주도에 의한 관료제와 민주적 통제로 나아갔다. 관저주도의 기원을 이해하기 위해 발표자는 대일본제국의 역사적 유산이라는 시점, 특히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을 포함하는 시각 등의 국제 비교 속에서 접근하고자 시도한다.

관저 주도의 기원 역사적 기원으로는 다이쇼 데모크라시로 거슬러 올라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다이쇼 데모크라시의 붕괴는 기존의 통설로서 쓰지 기요아키(辻清明)가 제시한 "할거성론"이 통설처럼 논의되었으나, 그보다는 제국을 불안정화시킨 요인, 민족이라는 요소에 초점을 맞춰볼 수 있다. 당시 일본은 제국주의가 자본주의에 선행하는 상황이었고 식민지의 상실은 곧 군사적 약화에 직결되는 상태였으므로, 일본은 국내의 계급대립보다도 식민지 내셔널리즘에 취약했다고 할 수 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군부에 의해 대외위기가 창출되었고, 추후 정당내각 붕괴로 이어졌다.

쓰지의 견해와 같이 전후 개혁 이후에도 대일본제국의 역사적 조건, 즉 관료제는 온존·강화되었고 전전의 할거성이 지속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약한 내각이라는 특징의 할거성은 오히려 전후 민주주의에 있어서는 이점이 있었다. 1960년대에 내각부의 설치를 제창하며 등장한 제1차임시행정조사회가 오늘날까지 이르는 관저주도의 원류라 할 수 있다.

이후 제2차임시행정조사회를 비롯한 행정개혁으로 인해 관저주도의 제도개혁의 흐름이 1980년대 나카소네 정권 하에서 다시 발생했다. 이 시기의 개혁은 외압과 관련지어 살펴볼 수 있는데. 재정지출 증가를 요구하는 미국의 외압과 ‘증세 없는 재정재건’을 내건 나카소네 정권의 개혁 간 재정적 모순이 있었으며, 결국 나카소네의 결단에 따라 외압에 의한 행정개혁이 이뤄졌다. 국제정치의 관점에서 이를 이해한다면 당시 일본이 대일본제국의 유산으로 지역주의를 결여하고 있었고, EU를 만드는 데 성공한 유럽과 달리 대미협력 이외에 선택지가 없는 외압에 대해 취약한 구조였던 것이다.

1990년대 이후에는 일본 경제의 정체로 인해 미국으로부터의 외압이 완화되고, 고이즈미 정권의 ‘관저주도’나 민주당정권의 ‘정치주도’로 인해 관료주의가 탈각되고 민주적 행정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흐름이 전개되었다. 결론적으로 이 시기 이래의 행정개혁에서 관저주도의 유래가 망각되었다.

발표가 끝난 후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일본 정치의 민주적 성격에 관해 1960년 후반 이후 등장한 ‘분절된 다원주의’라는 시각은 본 연구와 어떤 식으로 관련이 있는지, 1980년대의 행정개혁을 외압보다 일본 내부적인 경제적 요인에 의한 정치적 선택으로 볼 수 있지 않을지, 관저주도에 대해 역사적인 흐름 이외에 수상이라는 인물의 성격과의 관계는 어떠했는지 등 질의에 대해 논의가 이루어진 후 세미나는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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