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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초청세미나

Seminars by Invited Experts

제작에서 실천으로: 1970년대 미공투 REVOLUTION 위원회의 제도비판미술정보
제목 제작에서 실천으로: 1970년대 미공투 REVOLUTION 위원회의 제도비판미술
발표자 박혜연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강사)
일시 2021년 5월 25일 12:30-14:00
장소 Zoom Webinar
회차 254회
토론
2021년 5월 25일, 제254회 일본전문가 초청세미나가 웨비나로 개최되었다. 4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박혜연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강사가 ‘제작에서 실천으로: 1970년대 미공투 REVOLUTION 위원회의 제도비판미술’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진행했다. 발표 내용은 아래와 같다.
발표자는 1969년 7월에 타마미술대학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활동했던 미술가공투회의를 전신으로, 1970년에 예술적 표현을 위한 집단으로서 결성된 미공투 REVOLUTION 위원회(이하 미공투 위원회)의 활동에 주목했다. 미공투 위원회가 이전과는 다른 전시방식을 시도하며 미술의 근원적인 제도성을 비판했던 점에 대해 기존 연구는 주로 이론적으로 접근한 경향이 있다. 특히 미공투 위원회 소속 작가들이 1971년부터 1975년에 걸쳐 발표한 영상작업은 회화 작업으로 회귀하는 1977년 이전의 과도기적인 단계로 평가되어 활발히 연구되지 않았다. 발표에서는 이러한 관점에서 벗어나, 지금까지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한 미공투 위원회의 1970년대 중반의 영상작업에 초점을 맞춰 작품을 만드는 행위를 사회적 노동에 대한 참여로서의 "실천"으로 자리매김하려 한 이유를 파악하고, 영상이라는 매체가 구체적인 일상의 시공간 속에서 살아 숨 쉬는 미술이기를 원했던 작가들의 작업에 이론적이고 실천적인 토대를 마련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했음을 밝히는 것을 목표로 했다.
미공투 위원회는 호리 코사이(堀浩哉), 히코사카 나오요시(彦坂尚嘉), 야마나카 노부오(山中信夫) 등을 주축으로 학생운동이 쇠퇴해가는 상황 속에서 “제도로서의 미술”을 비판하고자 한 시도였다. 그들은 비물질주의적 관념미술을 지향한 일본개념파와 만들지 않는다는 “비제작”을 중시하여 물질주의 미술을 추구한 ‘모노하’와는 반대로 실천으로서의 제작을 내세움으로써 물질주의와 비물질주의라는 이원론에서 탈피할 수 있었다. 특히 그들은 프락시스에 의거한 실천과 활동 그 자체를 핵심으로 보았고, 집단으로 제작하는 과정을 강조하였으며 『기록대』, 『미술사평』 등의 출판물을 통해 작업과 견해를 사회에 발신하였다.
이어서 발표자는 미공투 위원회 작가들이 필름과 영상을 사용하여, 어떻게 미술과 삶, 제도적 공간과 일상적 공간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1970년대 일본이라는 시공간 속에 그들의 작업을 구체적으로 위치 지었는지 소개했다. 야마나카 노부오는 <강을 찍은 필름을 강에 투사하다>라는 작업을 통해 영화로서의 필름과 반대되는 미술에서의 필름 사용을 보여주었으며, 히코사카 나오요시는 <필름 듀엣: 수직의 바다>를 통해 영상을 일상 세계 속으로 편입시키는 작업을 수행했다. 호리 코사이는 에서 텍스트가 소리와 이미지로, 그리고 소리와 이미지가 다시 텍스트로 치환되는 사이클을 형성하여 영상 매체로 인한 소통의 오류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작업들의 분석을 통해 영상이라는 매체가 미공투 위원회 소속 작가들의 작업에 있어서, 학생 운동 이후 사회에 팽배했던 불신, 소통의 부재 및 단절과 같은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미술의 근원적인 제도성을 철저히 부정하는 한편, 제작을 다시 실천으로 삶 속에 깊이 뿌리 깊게 내리는 것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발표가 끝난 후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질문은 다음과 같다. 동시대적인 아방가르드와의 구분되는 미공투 위원회의 특질이 어떤 것인가? 그들의 작업이 1977년 이후 회화로 회귀한 이유는 무엇인가? 미공투 위원회의 활동에 미술운동뿐만 아니라 정치운동으로서의 의미도 있었는가? 그들의 작업이 선(zen)과 같은 정신적인 관념과 연결되어 해석되지 않았는가? 대중 및 미술계에서 어느 정도의 공감을 이끌어냈는가? 1972년 이후 학생 운동을 비롯한 사회 변혁에 대한 회의가 팽배해진 가운데 이들이 자신들의 활동을 유지해갈 수 있었던 이유는 어디에 있었는가? 질의응답이 이뤄진 이후 세미나가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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